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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벨로 Big 투어-강화 교동도시간이 멈추고 이야기가 춤추는 강화 교동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깊은 섬이
시간이 멈추고 
이야기가 춤추는 강화 교동도

 

서울에서 겨우 1시간 거리, 한때는 낙도였던 교동도가 이제 수도권의 보석이 되었다. 섬을 일주하는 30km의 평화나들길에서 겨울 한나절을 보내며 잊고 있던 감성이 되살아났다. 광활한 평야가 곳곳에 펼쳐져 있어 면적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고, 북쪽 해안을 막아선 철책은 이 섬과 주민의 기구한 운명을 대변한다. 개경과 한양 초입에 자리한 입지는 역사의 무게를 심층에 담고 있고 시간이 멈춘 대룡시장에서 아련한 추억에 젖어든다 

철책선 바로 옆을 따라서 달리는 교동도 해안길. 철책 너머로 북한땅이 지척으로 보인다

 

친한 후배와 만나 식사를 하다 교동도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요즘 자전거타기를 즐긴다고 하니 그 후배가 반색을 하며 교동도에 한번 가보라는 것이었다. 나한테 딱 맞을 거라나. 교동도는 아직 가본 적이 없다. 알고 있는 정보란 강화도 근처에 있는 접경지대의 섬이라는 정도였다.

며칠이 지나 문득 후배가 이야기한 교동도 생각이 떠올랐다. 한번 가봐야겠다 싶어 교동도에 관한 정보와 가는 길, 그리고 볼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한때 잘 나갔던 변경의 섬 

교동도는 강화도의 서북쪽에 있는 섬이다. 현재 살고 있는 주민은 약 3천명인데 1965년경에는 지금의 4배인 1만2천명까지 살았다고 한다. 북부 해안선은 휴전선의 남방한계선으로 섬 북쪽의 말탄포구에서 약 2km 전방에 북한 땅 연백군(지금은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나뉨)이 빤히 바라보인다.
“전쟁이 곧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잠시 머물렀지”하며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사람들, 고향땅을 바라보는 주민들이 어느 곳보다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전쟁 전에는 연백군도 38선 이남의 한국 땅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교동도는 옛날에 대운도(戴雲島)라고 불렸는데 ‘구름이 머무는 섬’이란 뜻이다. 그만큼 교동도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섬인 것 같다.
집에서 교동도까지 가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버스가 교동도까지 들어가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무려 3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시간을 잘 맞추어도 가는 데만 3시간30분이 소요된다. 그러면 왕복 7시간.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낼 것 같았다. 반면에 자차로 가면 1시간 정도밖에 안 걸린다. 그렇다면 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는 게 훨씬 낫겠다 싶어 직접 운전해서 가기로 했다.

 

검문소 두 곳을 거쳐서 진입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자전거를 싣고 헬멧을 챙겨 출발했다. 가는 길은 김포를 지나 강화도를 거쳐 교동대교를 넘어가는 코스다. 교동도에 들어가기 전에 강화도 인화리에 있는 해병대초소에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통행증을 받았다. 교동대교 앞에 있는 검문소에서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고 2km의 교동대교를 건너 교동도로 들어갔다.
교동대교는 2014년에 개통되었다. 다리가 없었을 때는 강화도에서 1시간에 한번씩 있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다. 당시에 교동도로 가려면 족히 반나절은 걸렸을 것이고 한번 가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했을 것이다. 다리가 개통되고부터는 이런 부담이 없어져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오늘 정말 운이 좋으세요”
우선 교동제비집을 찾아갔다. 안내해주는 아주머니가 나와서 반갑게 맞이해준다. 1층은 전시시설이고 2층에는 교동도의 특산물과 커피를 파는 카페가 있다. 1층에서 교동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큰 화면으로 망향대에 설치된 CCTV로 북한지역을 실시간으로 보았다.
“오늘은 북한지역이 아주 잘 보이네요. 최근에는 미세먼지가 끼거나 날씨가 흐려서 잘 안 보이는데 오늘 정말 운이 좋으세요.”
안내원이 좋은 운으로 좋은 날에 왔다고 하니 기분이 좋다. 그러고 보니 날씨는 춥지만 미세먼지도 없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교동도에는 바로 앞에 보이는 고향땅에 가지 못하는 황해도 출신 실향민이 많이 살고 있단다. 그분들이 자유롭게 남북을 오가는 제비들이 부러워 이곳 안내소 이름을 제비집이라고 지었단다. 그 말을 듣자 이곳 주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이 느껴졌다. ‘이곳은 그냥 즐기기만 하는 곳이 아니구나. 섬의 마음을 느껴보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원의 권유로 ‘교동신문’을 발행해 보았다. 신문에 내가 나온 모습을 보니 재미있다. 아이들과 함께 와서 만들어보면 아주 즐거워할 것 같다. 섬을 전체적으로 안내하는 지도를 한부 받았다. 교동도에는 ‘평화나들길’이라는 자전거일주도로가 있어 한바퀴 도는데 2~3시간 걸린다고 한다. 

 

몇 개의 섬이 모여 하나의 큰 섬이 되다 
차에서 자전거를 꺼내 펼쳐서 출발했다. 교동도는 섬이지만 산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평지다.  3~4개의 각기 다른 섬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연결과 매립을 통해 교동도라는 큰 섬을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평지가 많이 형성된 것이다.
섬을 일주하는 자전거길은 새로 만든 길은 아니고 기존 농로와 마을길을 잘 활용했다. 대부분이 평지여서 자전거 타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자전거전용도로처럼 잘 포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성스럽게 가꾸고 정비해 놓았다. 주위를 돌아보면서 논과 논 사이, 마을길을 천천히 다니는 게 여유롭고 즐겁다.
첫번째 목적지는 교동읍성이다. 그런데 이 작은 섬에 무슨 성이 필요했을까 의아했다. 내용을 알아보니 옛날에는 이곳이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였다. 고려·조선시대에는 이곳을 지나 개경과 한양까지 직접 배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의 사신도 배를 타고 올 때는 이곳을 거쳐 개경으로 갔다. 게다가 한강과 임진강 하구가 만나는 지점을 감제하는 요충지여서 항상 정예병력이 상주하고 있었다. 조선 때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수도와 가까워 감시가 용이한 점 때문에 왕과 왕족의 유배지이기도 하였다. 교동읍성은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손실되었다가 옛 흔적 위에 2018년에 지금의 성문과 성벽을 개축했다. 세월의 변화를 한참 생각해 보았다.

 

겨울바람마저 상쾌하게 느껴지는 길  
교동읍성을 나오면 마을길을 지나 바다가 나온다. 바다 건너는 강화도 본섬이다. 마을길을 벗어나 처음 바다와 만난 곳은 동진포라는 곳이다. 동진포는 과거에 중국의 사신이 왔을 때 우선 이곳에서 쉬면서 바다 상태를 보다 일기가 좋아지면 배를 띄워 본토로 가는 포구라고 한다.
동진포에는 재미있는 길이 있다. 바닷가 갈대밭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이다. 원래 있던 길은 아니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길이다. 오솔길에 들어서면 왼쪽은 키 큰 갈대밭이고 오른쪽은 아름다운 바다가 보인다. 갈대밭 사이로 난 길이라 분위기도 좋고 아주 운치가 있다. 천혜의 데이트코스다. 지금이 겨울이라 그렇지, 갈대가 무성한 여름이나 가을에 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런 곳에 혼자 오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을 것 같다.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는 ‘자전거가 쉬어 가는 곳’이라는 자그만 해안정자가 나온다. 교동도는 정말 정이 넘친다. 세련되지는 않고 약간 투박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 하나하나에서 정이 느껴진다. 벤치에 앉아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여기서부터 제대로 된 자전거길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아스팔트길은 아니고 시멘트로 포장된 기존의 농로다. 길이 울퉁불퉁해서 노면 진동이 그대로 몸에 전해온다. 정겹다.
특별히 이정표는 없지만 자전거길에는 자전거 표시와 함께 파란색 선을 그려놓아 그것만 따라 가면 섬을 일주할 수 있다. 논 사이에 난 자전거길은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어 페달을 밞으면 가슴이 탁 트이며 상쾌하다. 마치 영화나 CF를 찍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겨울바람이 강하지만 그마저도 상쾌하게 느껴진다.

 

 

월선포의 배들은 어디로 갔을까
코스를 계속 따라가면 교동대교가 건설되기 전에 강화도로 오고갔던 포구인 월선포가 나온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하다. 이전에는 배로 사람과 차를 실어주었을 텐데 그 배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월선포에는 문을 닫은 슈퍼마켓과 부동산소개소 그리고 화장실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정말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다.
월선포를 지나면 예쁜 교동교회가 나온다. 이 교회는 새로 지은 건물이고 이전의 교동교회는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가까운 곳에 있다. 이곳을 지나자 길에서 잠시 혼란이 생겼다.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자전거길을 알려주는 파란선이 끊어졌고 이정표도 없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망설이다 지도를 꺼내 확인해보니 오른쪽 길로 가야된단다. 방향을 다시 잡았다.
이제부터는 좁은 동네길이 잠시 이어진다. 10여분 정도 가니 동네를 벗어나면서 큰길이 나왔다. 큰길가에 ‘자전거로 환승하는 장소’라는 표지가 있고 쉼터도 있다. 차에 자전거를 싣고 와서 이곳에 주차를 해놓고 여기부터 자전거를 타라고 해놓은 편의시설인가 보다. 이곳부터 교동도 일주를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큰길을 건너면 본격적으로 긴 농로가 나온다. 직선으로 뻗은 농로의 길이가 1km를 넘는 것 같다. 교동도에 오면 몇 가지 사실에 놀란다. 그중 하나가 아주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오기 전에는 그냥 작은 섬이겠지 라고 생각한 교동도가 실제로 와보면 섬이라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넓은 평야가 많다. 

 

아무 대가 없이 목숨을 바친 분들 
일직선의 긴 농로를 지나면 드디어 철책이 나온다. 이건 진짜 철책이다. 자전거길은 이제부터는 긴 철책선을 따라 달린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철책선을 따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물 것이다. 철책 너머로는 북한땅이 뚜렷하게 보인다.
철책선 바로 옆으로 자전거를 탄다는게 신기하다. 이렇게 북한이 보이는 철책 옆을 그냥 옆집 지나가듯이 여유롭고 자유롭게 다닌다는 게 참 신기하다. 38년 전에 최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연평도 포격 사건도 잠시 떠올랐다. 음….
철책선을 따라가면 을지타이거여단 충혼탑이 나온다. 6·25전쟁 때 교동도를 기반으로 유격활동을 펼치다 전사한 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충혼탑 아래에는 묘소도 몇 기 있다. 비문을 읽고 잠시 숙연해진다. 이분들은 무엇 때문에 스스로 그 힘들고 어려운 일을 했을까? 누가 시킨다고 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돈을 준다고 한 것도 아닐 것이다. 오로지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젊은 목숨을 희생한 것이다. 전우가 죽고 다치는 모습을 매일 겪었을 텐데 그분들은 그 무서움과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만일 나라면 어땠을까? 과연 할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숙연함과 고마움에 가슴이 울컥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충혼탑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


망향대의 설움 
충혼탑을 나오면 고구저수지가 나온다. 섬에 있는 저수지치고는 엄청 크다. 저수지에는 동네주민인 듯한 몇 명이 낚시를 하고 있다. 고구저수지는 여름에 연꽃이 가득 핀다고 한다. 그때 와서 보면 정말 장관이겠다. 물이 너무 깨끗하다. 파란 하늘과 산이 마치 거울처럼 물에 그대로 비춰져 있다.
저수지를 지나 철책길을 따라 20분 정도 가면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망향대가 나온다. 망향대는 6·25전쟁 때 이곳으로 피난 온 황해도민들이 그들의 고향을 그리면서 조성한 곳이다. 추석이나 설날이면 여기에 와서 제사를 드린다고 한다. 망향대에는 고배율 쌍안경이 설치되어 있어 북한땅이 선명하게 잘 보인다. 들여다보니 북한 초소도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북한에는 자전거가 많은가 보다.
다시 출발해 길을 따라가면 난정저수지가 나온다. 교동도에는 두개의 큰 저수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 와있는 난정저수지고 다른 하나는 아까 지나온 고구저수지다. 교동도에 와서 놀란 두번째가 바로 이 저수지들의 크기다. 섬에 있는 저수지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의 크기다. 섬들을 연결해 매립하면서 남은 공간을 저수지로 활용하게 된 것 같다. 이 저수지가 서울이나 대도시 근교에 있었다면 놀이배도 탈 수 있는 좋은 유원지가 되었을 것이다. 저수지 옆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면 넓은 바다와 저수지를 함께 볼 수 있다. 정말 가슴이 탁 트인다. 전망대 2층에는 망원경이 있어 이번에는 연백염전쪽 북한땅을 볼 수 있다. 

 

최초의 향교가 여기에!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출발. 여기부터는 포장도로는 끊어졌고 호숫가를 따라 비포장도로가 나 있다. 내 자전거는 시티형 미니벨로여서 비포장도로를 타고 가기는 어렵다. 그냥 내려서 밀고 갔다. 멋진 저수지 풍경을 보면서 천천히 자전거를 밀고 걷는 것도 즐겁다. 비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해바라기정원이라는 간판이 있다. 이곳이 수도권에서 가장 큰 해바라기 정원이란다. 여름이 되어 노란색 해바라기가 호숫가에 가득 피면 장관이겠다. 이번 여름에 꼭 다시 와야겠다.
이제 길은 다시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마을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 교동향교에 도착했다. 처음 출발해서 교동읍성에 갈 때 들렀어야 하는데 지나온 길을 다시 온 것이다. 교동향교는 잘 관리되어 있었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년)에 안향이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최초로 공자상을 들여와 모신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라고 한다. 놀라운 일 아닌가? 교동도는 정말 보석과도 같은 곳이다. 이 작은 섬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다니 정말 놀랍다. 진즉 와볼걸. 지금이라도 이렇게 왔으니 다행이다.

 

연산군은 왜 이곳으로 유배왔을까 
교동향교를 나와서 마지막으로 연산군 유배지를 찾았다. 교동도는 고려시대부터 왕과 왕족의 유배지였다. 그만큼 한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곳을 유배지로 택했을까? 혹시 이곳이 왕기를 누르는 기운이 있는 곳이 아닐까? 알아보니 수도에 가깝게 있어 감시하기가 좋고 바다가 험해 탈출하기는 어렵다는 특징 때문에 유배지가 된 것이라고 한다.
연산군 유배지에는 당시 연산군의 유배모습을 재현해 놓은 인형들과 유배문화원이라는 단층의 작은 건물이 있다. 문화원 안에 소개된 자료에 의하면 이곳을 거쳐간 왕과 왕족이 모두 10명이 넘는다. 오기 전에 교동도는 연산군이 유배된 곳이라고만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왕과 왕족이 유배되었다니 다시 한번 놀랐다. 왕들의 유배생활… 그들에게는 후회와 원망의 나날이었을 게다. 

 

추억의 대룡시장 풍경 
이제 교동도를 다 돌아보고 주차해 둔 교동제비집으로 돌아왔다. 자전거는 접어서 차에 넣어 놓고 바로 앞에 있는 대룡시장으로 갔다. 대룡시장은 인터넷에도 많이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시장통은 1950~60년대 시장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고 있다. 대룡시장의 옛날 풍경을 보면서 나이 드신 분들은 추억에 잠겨 즐거워하고, 젊은이들은 “그때는 이랬었나요?” 하면서 신기해한단다. 시장 안에는 옛모습의 약국. 이발소, 가게들이 있고 옛날 선거 포스터들도 붙어있다. 담벼락에는 옛날 모습의 벽화가 정감 있게 그려져 있고 아이들이 말뚝박기를 하며 놀고 있는 인형도 만들어 놓았다.
옛날풍경을 강조하기 위해 60년대 시골극장 건물까지 있고 극장입구에 ‘영자의 전성시대’라는 영화 포스터도 붙어 있다. 평일인데도 관광객들이 꽤 있다. 가게 주인의 말에 의하면 주말이면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로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누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훌륭한 일을 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보고 즐기고 물건도 사서 좋고, 주민들은 경제에 도움이 되어 좋고. 

바닷가 평지에 자리한 난정저수지(오른쪽)는 거대한 규모와 입지가 매우 인상적이다. 둑 왼쪽 철책선 너머는 바다

 

혼자서 대면하는 풍경의 진면목 
아침에 집에서 출발해 대룡시장까지 보고나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후배의 권유로 찾아온 교동도.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다. 교동도는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 한단다. 대룡시장에 일부러 만들어 놓은 옛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농로 사이에 나있는 교동도 일주도로와 마을길을 직접 가보자. 그리고 느껴보자. 그러면 왜 시간이 멈춰져 있는 곳이라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모든 시간은 멈춰 있고 나만 혼자 깨어서 시간 사이를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겨울이라 논에 나와 일하는 사람도 없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없었다. 이 길을 오직 나 혼자만이 페달을 밟으며 달리는 기분…. 오늘 좋은 곳에 정말 잘 왔다. 왕의 유배지였던 한(恨), 지척인 고향땅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의 애환, 충혼탑에 흐르는 비탄의 감정. 20대 군복무시절 이후 까맣게 잊고 지내다 38년 만에 다시 만져본 철책선의 차가움. 많은 것들이 그동안 잊히고 묻혀 있던 감성을 깨운다.

 

고마운 그분들 덕분에 누린 시간  
교동도는 집에서 1시간 거리밖에 안 되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니 신기하다. 오늘은 정말 알차고 의미 있는 하루였다. 삶에서 또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이런 멋진 곳을 소개해 준 후배부터 충혼탑의 주인공들, 자전거길을 만들어 준 교동도 주민들, 바다를 매립해 멋진 들판과 저수지를 만들어준 선조들, 교동대교를 건설해준 분들, 철책선을 불철주야 지켜주는 해병대장병들… 그분들의 수고가 있어 내가 오늘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정말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하루였다. 요즘은 감사할 일이 너무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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